미식축구

일본 대학 미식축구, 생각보다 뜨겁다

kuaf-notes-17 2025. 6. 30. 06:53

 

미식축구는 보통 미국의 스포츠라고 여겨진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고, 미국 NFL이나 슈퍼볼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의외로, 미식축구는 일본에서 오랜 시간 동안 대학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왔다. 일본의 대학 미식축구는 단순한 ‘미국 따라 하기’가 아니다. 그들만의 시스템과 문화, 리그 구조를 갖추고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특히 칸사이(關西)와 칸토(關東)라는 두 리그를 중심으로 대학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펼쳐진다. 경기력도 아시아에서는 최상위권이고, 팀 운영 방식이나 훈련 시스템도 상당히 정교하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스포츠 정신이 더해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의 대학 미식축구는 생각보다 더 넓고 깊은 세계다. 이 글에서는 일본 대학 미식축구의 특징과 구조, 주요 팀, 그리고 일본식 풋볼 문화의 독특한 면을 네 가지로 나눠 소개한다.

 

일본 대학 미식축구 결승전 포스터 (사진 출처: 일본 고시엔볼 홈페이지)
(사진) 제79회 고시엔 볼 결승전 포스터 (사진 출처: 일본 고시엔볼 홈페이지)

 

 

칸사이 vs 칸토, 일본 대학 미식축구의 양대 리그

 

일본의 대학 미식축구는 크게 두 지역 리그로 나뉜다. 하나는 오사카, 교토를 중심으로 한 ‘칸사이 리그’이고, 다른 하나는 도쿄, 요코하마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칸토 리그’다. 이 두 리그는 독립적으로 정규 시즌을 운영하며, 각 리그의 챔피언은 매년 12월에 열리는 ‘고시엔 볼(Koshien Bowl)’에서 맞붙는다. 고시엔 볼은 일본 미식축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 경기로,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로 알려진 고시엔 스타디움에서 열린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이 경기는 지역의 자존심이 걸린 빅매치이자, 대학 미식축구의 전국 챔피언을 가리는 무대다. 방송 중계도 이뤄지고, 수만 명의 관중이 현장을 찾는다. 마치 미국의 내셔널 챔피언십 게임처럼 여겨지며, 대학 풋볼의 열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칸사이 리그는 전통적으로 파워러시와 수비 중심의 플레이에 강점을 두고 있으며, 칸토 리그는 빠른 템포와 패스 게임이 발달되어 있다. 이 지역 차이는 경기 스타일에도 반영되어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된다.

 

전통 강호와 떠오르는 신흥 강팀

 

일본 대학 미식축구에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강호들이 존재한다. 간사이 리그의 대표 팀으로는 간사이 대학, 교토 대학, 리쓰메이칸 대학이 꼽힌다. 특히 간사이 대학은 ‘미식축구 명문’으로 불리며, 여러 차례 고시엔 볼을 우승한 경험이 있다. 반면 간토 리그에서는 니혼 대학과 와세다 대학이 대표적이다. 이들 팀은 수십 년 간 축적된 시스템과 전통을 바탕으로 고른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팀 운영에도 미국식 시스템이 많이 반영돼 있다. 전문 코치, 분석 스태프, 영상 리뷰 시스템 등 NFL 못지않은 준비로 시즌을 치른다. 최근에는 지방의 중소 대학 중에서도 실력 있는 고교 선수들을 유치하며 약진하는 팀이 늘고 있다. 특히 규슈 지역이나 홋카이도에서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간토나 칸사이 외 지역 대학에 진학하면서, 리그 간의 전력 차도 줄어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리그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식 팀 운영과 독특한 훈련 문화

 

일본 대학 미식축구는 미국식 전술과 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운영 방식에서는 철저히 일본식 조직 문화가 드러난다. 선수들은 실력 이전에 태도와 예절을 먼저 배운다. 연습이 시작되기 전 단체 정렬을 하고, 구호를 외치며 팀 분위기를 다잡는다. 선배에게는 철저한 존칭어를 사용하고, 연습 기구 정리, 그라운드 청소 등도 모두 후배들의 몫이다.

 

이처럼 엄격한 위계 구조는 한국 스포츠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일본은 그것을 보다 체계적이고 일상화된 방식으로 운영한다. 동시에 체력 훈련과 전술 훈련은 미국식 시스템을 따른다. 웨이트 트레이닝, 포지션별 미팅, 영상 분석은 매일 이루어지고, 특정 팀은 미국 코치진을 초청하거나 직접 연수를 보내기도 한다. 일본식 ‘성실함’과 미국식 ‘효율성’이 결합된 형태로, 특유의 조직력과 집중력을 기반으로 실력을 키워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문화는 일본 풋볼 특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국제 교류와 NFL 도전, 점점 커지는 꿈

 

일본 대학 미식축구는 과거에는 국내 리그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점차 국제 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다. 간사이, 간토의 대표 팀은 비정기적으로 미국 대학팀과의 교류전을 치르고 있고, 일부 팀은 하와이나 캘리포니아에 전지훈련을 떠나기도 한다.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일본에서는 언어 장벽도 상대적으로 적어, 국제 대회나 교류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 개별 선수 차원에서도 NFL을 향한 도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일본인 선수 중에는 NFL 인터내셔널 플레이어 프로그램(IPPP)에 참가해 캠프 초청을 받은 사례도 있다. 비록 아직까지 NFL 정규 시즌에 뛴 선수는 거의 없지만,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 리그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상위 선수들의 실력도 함께 향상되고 있고, 몇몇 대학은 아예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 ‘글로벌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국제적 시도는 일본 대학 미식축구가 단순히 지역 스포츠를 넘어 세계 무대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다.

 

결론

일본 대학 미식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미국식 스포츠를 일본식 가치관과 교육 시스템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문화다. 칸사이와 칸토의 리그 구조, 전통 강호와 신흥 강팀의 대결, 일본식 팀 운영 문화, 그리고 점점 확대되는 국제 교류까지.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지며 일본 대학 미식축구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 풋볼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 일본을 빼놓을 수는 없다. NFL 팬이라면 이 흥미로운 평행 세계를 한 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깊이와 진정성이 그 안에 있다.